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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은혜가 넘치는 예전중앙교회

생수나눔이란, 주일에 제단에서 선포된 말씀(생수)을
샘예배, 가정예배, 공동체 모임 때에 깨달은 은혜와 삶에 적용한 부분을 고백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생수의 말씀이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성령의 능력으로 회복과 사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 24일 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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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순종 작성일17-12-24 18:16 조회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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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24일 주일
52. 야곱의 집을 다스리는 왕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26~33절 중 31~33절 말씀)

 내일은 ‘성탄일’입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죄 가운데 갇혀서 하늘이 막힌 채로 절망의 무덤에서 살고 있는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우리를 살리고 구원하시려고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으로, 우리에게로 보내신 날, 그것도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기 위해 가장 처참한 십자가에서 그 아들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시고 보내주신 날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아버지의 이 마음을 생각할 때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우리는 이 날을 사람들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상업주의와 세속주의에 물든 채로 진정한 그 의미조차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부에서는 ‘성탄절’ 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버린 ‘홀리데이’라고 일반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예수님이 나셨을 때의 여러 부류의 반응 가운데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의 무리와 같은 반응을 보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탄절의 의미가 변질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와 그 안에 담긴 하나님아버지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가슴에 되새기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31절에서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33절에서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이름으로 직접 지어주신 이름 ‘예수’는 ‘구원’이라는 의미의 ‘예슈아’를 음역한 것으로, 우리는 이 이름으로도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기 전부터 택정하신 자기 백성에게 얼마나 집중하시고 주목하고 계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아버지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허물과 죄에 빠진 사기꾼과도 같은 ‘야곱의 집’에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성탄절’은 야곱과 같은 우리 각자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날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아버지께 드리는 예배와 찬양과 경배는 곧 우리에게 죄로 닫힌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려고 찾아오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주로 모셔 들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2:11)
 마2:11절에서 동방에서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 그 왕께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던 동방박사들이 마침내 그 앞에 엎드려 아기께 경배할 때 예물로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왕께 올려드리는 예물을 의미합니다. 황금 같은 믿음과 유향의 기도, 몰약과 같은 부활의 신앙으로 온 인류를 대속하실 메시아이시자 구세주, 왕이신 예수께 올려드린 것으로 이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 동방박사들과 같이 야곱과 같은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 들이기로 작정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가서 그분께 경배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 들이며 경배하는 사람들의 삶의 구체적 실례 가운데서도 우리는 두 가지의 상반된 경우를 보게 됩니다. 먼저 첫 번째로는 막10장에 나오는 부자청년의 경우입니다. 그 부자청년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며 영생을 구하나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는 순종하지 못하고 슬픈 기색을 띤 채로 주님 곁을 떠나갑니다. 이는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왕이 아니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셨다면 그는 무조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눅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경우입니다. 그는 그 당시 세리 장으로 부자였고, 그가 부자가 된 배경은 악하고 불의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이 자기가 사는 곳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에 예수님을 만나고자 돌무화과 나무위로 올라가기까지 했고, 예수님은 그곳에 이르셔서는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삭개오는 자기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왕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아서 자기의 재물 중 토색한 것을 네 배나 갚겠다고 먼저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야곱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야곱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비전을 품고 있는 이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야곱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의 왕으로 모셔 들이고 그분께 경배함으로써 현재의 삶 속에서 가나안의 축복과 구원과 영생을 경험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생수 나눔
주제: 나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가?
미션: 마태복음 1~2장, 누가복음1~2장 읽기!
중보기도: 한국교회가 이 어둠의 시대의 빛의 주역으로 일어나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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